옛날 분들은 왜 버드나무 아래에서 이별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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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분들은 왜 버드나무 아래에서 이별을 했나요?[편집]

옛날 분들은 왜 버드나무 아래에서 이별을 했나요?   TV 퀴즈프로그램에서 보니깐 옛날에는 이별을 버드나무아래에서 했다고 하던 데 이유가 있을까요?    

답변 :
【신화·상징】 《삼국유사》에는 복수의 화신으로 나타난다. 신라의 혜통(惠通)이당나라 공주에 붙은 병마 교룡을 쫓았더니 교룡이 혜통을 원망하여 신라에 가서 많은 인명을 해쳤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간 정공(鄭恭)이 이 소식을 전하자 혜통은 귀국하여 다시 교룡을 쫓아버렸다. 교룡은 정공을 원망하여 버드나무로 변해서 정공의 집 앞에서 자랐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정공은 이 나무를 매우 좋아하였다. 신문왕이 세상을 뜨자 효소왕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길을 닦는데, 이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이를 베려 하였으나 정공이 한사코 반대하였다. 화가 난 효소왕은 정공을 죽이고 집터를 묻어버렸다. 용은 마침내 정공에게 복수한 뒤 기장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물가 어디서나 잘 자라는 나무로서 줄기찬 생명력을 상징하고 칼처럼 생긴 잎은 장수나 무기를 나타낸다. 학질을 앓고 있을 때 환자의 나이 수만큼 버들잎을 따서 봉투에 넣고 겉봉에 유생원댁입납(柳生員宅入納)이라 써서 큰 길에 버리면 쉽게 낫는다고 믿었다. 불교에서는 대자대비의 관세음보살이 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현신할 때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쥔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 길을 떠나는 낭군에게도 버들가지를 꺾어주어 보냈는데, 이는 여인의 젊음은 오래가지 않으므로 청춘을 외롭게 보내지 않게 빨리 돌아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미련이 남아서 돌아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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