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聲鶴唳 풍성학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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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聲鶴唳[편집]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風聲鶴唳 풍성학려 관련 설명[편집]

겁을 집어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에도 놀란다는 말  

동진(東晋) 효무제의 태원 8년 진(秦)나라 황제 부견은 스스로 병 60만, 기마 27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떠나 밀물같이 진(晋)으로 육박했다.

진(晋)은 현명한 재상 왕맹을 써서 부견 일대 사이에 진(晋)보다 수배나 되는 판도를 자랑하는 제일의 강국으로 껑충 뛰어 올라갔다.

왕맹은 죽음에 앞서,“진(晋)만은 건드리지 마시도록.” 하고 유언했다.

부견이 진(晋)을 공격한 것은 그 후 8년이 지나서였다.

진(晋)은 재상 사안의 동생 사석을 정토대도독으로 삼고 조카인 사현을 선봉도독으로 삼아 8만의 군세로서 진의 대군을 맞이했다.

먼저 사현의 참모 유로지는 정병 5천을 이끌고 낙간에서 진의 선봉을 격파했으며 그 장(將)을 목베었다.

사현등도 용약 전진했다.부견이 수양의 성에 올라 진군(晋軍)을 바라보니 진용이 정연했다.


무심코 팔공산 쪽으로 눈을 돌리자 산은 진군으로 꽉 차 있었다. 놀라 다시 보니, 그것은 풀과 나무였다. 그것을 깨닫자, 그는 불안을 느꼈다.

가슴 속에서 겁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진군(秦軍)은 비수 언덕에 진을 치고 있어 진군(晋軍)은 건널 수가 없었다.

사현은 군사를 보내어 진(秦)의 진지를 조금 후방으로 퇴각시켜 진군(晋軍)을 건너게 한 다음 거기서 승부를 결정하자고 청했다.

부견은,“우리 군을 약간 뒤로 물러서게 했다가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격멸해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진(秦)의 군세는 뒤로 물러서라는 신호를 받자 끝없이 퇴각을 시작하여 이제 정지시킬 수도 어찌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사현의 군대는 강을 건너 추격했으며 진군(秦軍)을 궤란(潰亂)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진병(秦兵)들은 앞선 자를 밀어 젖히고 자기가 먼저 도망치고자 밀고 밀리고 하면서 자기편끼리 밟히고 밟고 하여 죽은 자가 부지기수로

들을 덮고 강을 메우는 꼴이었다.


겁을 잔뜩 먹은 진(秦)의 병사들은 풍성학려(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진군(晋軍)이 추격해 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그저 오금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상은 "진서(晋書)"의 「사현전(射玄傳)」이 전하는 것으로, 여기서 겁을 먹고 아무것도 아닌 소리에 놀라는 것을 「풍성학려에 놀란다」고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