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魚之交 수어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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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魚之交 수어지교[편집]

   물 수      물고기 어      갈 지      사귈 교  

수어지교(水魚之交) 관련 설명[편집]

물과 고기가 떨어질 수 없듯이 아주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사이  


한(漢)의 재흥(再興)을 목적하는 유비가 때마침 몰아치는 폭설을 무릅쓰고,

관우 장비에게 핀잔을 받으면서도 세 번 와룡강의 제갈공명을 찾은 것은 공명도 지적한 바와 같이 아직 거점으로 할 지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한(後漢) 최후의 황제인 헌제를 세워 제멋대로 행동을 자행하던 대신 동탁이 멸망하자,

아버지 대부터 양자강 하류에 있는 오(吳) 본거지로 한 손책은 주유등 지모가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그 아들인 손권도 노숙 등 인재를 초빙해서 착착 강동에 세력을 쌓고 있었다.한편 산동에서 황하 유역을 제압하고 있던 조조는 헌제에게 접근하여 실력과

대의명분을 함께 손에 넣으려고 꾀하고 있다.

그와 같은 정세 속에서 유비는 남쪽의 유포를 의지하고 있었으나, 그 부이이나 아들은 유비가 영토를 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경계하고 있었다.

유비가 서서의 권유로 공명과 만날 결심을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자기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빈틈없이 이와 같은 주위 형세를 지적하고 나자 기세를 타고 있는 북쪽 조조를 상대로 지금 싸움을 해서는 불리하며 차라리 지반을 확고히 굳히고 있는

오의 손권을 자기편을 만들어 무엇이 어떻든 간에 양자강 상류의 촉(蜀)으로 들어가 그곳을 근거지로 하고 북쪽을 공격할 것을 권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러저리 망설이고 있다가 그 말에 속이 후련해진 유비는 공명을 군사(軍師)로서 맞이하고 침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당시 37세인 공명에게 그토록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다고 하는 관우․장비에게

“내가 공명과 함께 지내는 것은 물고기가 물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부디 두 번 다시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지 말아 주게.”

그 후 유비는 촉으로 들어가 남만을 정벌해서 배후를 튼튼하게 굳히고, 오와 함께 조조를 격멸하려는 삼국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서 「」하면 주군과 그 신하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나, 지금은 군신에 한하지 않고 깊은 교우 관계에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