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淸無大魚 수청무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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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淸無大魚 수청무대어[편집]

   물 수      맑을 청      없을 무      클 대      물고기 어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관련 설명[편집]

너무 맑은 물에는 큰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  

후한초(後漢初)의 일이다.

반초의 아버지인 반표는 사가(史家)로서 유명했고,

그 형인 반고는 '한서(漢書)'의 저술로 유명했다.

또 그의 누이동생인 반소는 문학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말하자면 학문 일갈고 할 만한 반씨 집에서 초만이 유별났다.


반초는 두뇌보다는 웅대한 마음과 건장한 육체를 장점으로 삼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렸을 때 집안 가난해서 관쳥의 임시 고용인으로 서류를 베끼는 일에 밤낮을 골몰하고 있었다.

어느 때, 붓을 놓고 한탄하면서 말했다.

“멀리 서역 땅에소 공을 세워 제후가 되고 싶다. 이런 글씨 쓰기란 정말 멍청이 짓 같다.”

주위 사람들은 기가 막혀 크게 웃었다.


그러자 그는“자네들 소인들이 진정한 남자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하고 뽐냈다고 한다.

과연 기회는 찾아들었다.

명제의 영평 17년 가사마의 관(官)으로 서역에 사신으로 나가 선선국에서 이름을 날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후 서역에 머물기를 30년, 서역 제국은 다 한(漢)을 두려워 하고 그 아들을 수도 낙양으로 보내어 복종을 맹세했다.

반초는 화제때 서역도호가 되고, 이어 정원후에 봉해져 원래의 숙원이 달성되었다.

영원 십사년 귀국이 허락되었으나, 8월에 수도에 도착, 9월에 병사했다.

그런데 이 반초가 서역도호를 그만 두었을 때 임상이란 사나이가 교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임상은 사무 인계차 반초를 방문했다.


“부디 서역을 통치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글쎄 자네의 성질을 보니 지나치레 엄하고 급한 것 같군.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대어(大魚)는 숨을 곳이 없어 살 수가 없다네.

그처럼 정치가 너무 엄하고 급해서는 못쓰네.

대범하고 조급히 서두르지 않고, 간이(簡易)를 취지로 삼아야 하네.”

임상은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고 그 자리에서는 물러났으나 나중에 불평스럽게 말했다.

“반초는 굉장한 책략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듣고 보니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구나.”


결국 임상은 반초의 말을 일고(一顧)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초가 말한대로 임상의 변경의 평화를 잃고 말았다.

이상의 이야기는 後漢書의 「반초전」에 있고 十八史略에도 나와 있다.

임상이란 사나이는 오늘날 말하면 일부 인텔리 타입과 같은 생각이 든다.

깔끔한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쳐 남이 따르지 않고 고독하게 지내는 형이다.

「물이 맑으면 대어가 없다」는 그런 생활방식을 다소 역설적인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孔子家語에 「공자 말하기를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무리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