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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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편집]

   맏 맹      어머니 모      석 삼      옮길 천      갈 지      가르칠 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관련 설명[편집]

 자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려서 산다함이니 이웃을 가려 사귀고 환경을 골라 옮긴다는 뜻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어머님 슬하에서 자라난 불쌍한 아이였다.

처음에는 어머님이 공동묘지 부근에 집을 얻어 살았는데 맹자가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어머님이 보니 사람이 죽어서 묻히고 또는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거나

제사 지내는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 곳은 자식 기를 데가 못 된다고 느끼고는 시장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아이들과 장사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어머니는 눈시울울 찌푸리면서,"안되겠다. 이곳도 우리 자식이 머물러 살 곳이 못되는구나!"하고는

다시 집을 옮겨간 곳이 글방 부근이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자식이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 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보고 배우는 놀이들이 글방 생활의 모든 것이었다. 놀면서도 질서를 지킨다든지 어른을 보면 공경스런 예를 한다든지 글방 문틈으로 엿들은 글을 외어보는 등 매우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이 곳이야 말로 아들을 기를 곳이다." 하고는 머물러 살면서 가르쳐 성공을 시켰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인이며 이름은 가(軻), 나는 다여 또는 자차다.

산동성 추현 출생, 공자의 인(仁)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仁義禮智의 네 가지 덕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여 제후에게 왕도(王道)를 말하고 인의의 정치를 권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공손축 등의 제자와 학리를 연구 토론하였다.사상사상(思想史上) 불후의 이름을 남겨 유학의 정통으로 숭상되며 아성이라 불리운다.

맹자가 십여 세 때 어머니의 곁을 떠나 타향으로 유학을 갔던 때의 일이다. 어느날 맹자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무명을 짜고 있었다.

맹자는 반가움을 걷잡지 못하고 어머니를 불렀으나 그의 어머니는 힐끗 한 번 시선을 돌렸을 뿐 여전히 베틀에 앉아 엄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동안 공부는 얼마 만큼이나 늘었느냐?""별로 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맹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어머니는 대뜸 베틀 모서리에 꽂혀 있던 손칼을 쥐고 주저함도

없이 여러 길이나 짜 놓았던 무명을 찢어 버리고 나서 책망하였다.

"봐라. 네가 공부를 한창 할 때 도중에서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온 것은 내가 이 필목을 중도에서 잘라 버리는 일과 다름이 없지 않느냐?"

맹자는 그 자리에 엎드려 사죄하고 지체없이 하직을 고한 후 그 길로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하여 드디어는 공자의 다음 가는 유교의 명현이 되었다.

자기 자신은 여하한 고난과 희생을 겪더라도 오직 그 아들을 훌륭한 인간으로 키우고자 하는 집념이 三遷之敎 또는 斷機之交라 하는 일화를 낳는다.

삼천지교는 어린이의 교육은 환경이 주는 영향이 크다는 것. 교육은 또한 환경에 지배되기 쉽다는 점 등을 가르쳐 준 말이다.

위대한 학자나 위대한 인물의 어머니는 반드시 그 아들 못지 않게 훌륭한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