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下阿蒙 오하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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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下阿蒙 오하아몽[편집]

   성씨 오      아래 하      언덕 아      어두울 몽  

오하아몽(吳下阿蒙) 관련 설명[편집]

학문의 재주가 없는 무식한 사람  비부오하아몽(非復吳下阿蒙)이 전문(全文)이다. 


한참 만나보지 못한 동안에 놀랄만큼 長足의 진보를 한 사람을 「비부오하아몽」이라고 한다.

위(魏)․오(吳)․촉한(蜀漢)이 정립(鼎立)해서 싸우고 있던 삼국시대의 어느날,

오왕 손권은 신하들에게 이와같이 말했다.

“학문이란, 자기 스스로가 개척해 나가야 한다. 저 여몽은 처음에 아무런 학문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배울 것을 권했다. 한 번 시작하자 여몽은 끊임없이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노숙이 몽하고 의논을 해 보았다. 그런데 노숙이 당해낼 수 없으리만큼 박식해졌다.

노숙은 기뻐하고 몽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무략(武略)에 뛰어나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이렇게 학식도 넓어져 이젠 오(吳)에 있을 때의 몽하고는 아주 딴판이로구나(非復)"하자 아몽은 의기양양 말했다.

"대저 사(士)란 헤어져 3일이 지나면, 다음에 만날 때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한다.

나날이 진보되는 것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말했다.


"아몽(阿蒙)의 아(阿)는 애칭이다. 젊어서부터 그를 알고 있던 노숙은 여몽을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것을 출전(出典)으로 하여 비부오하아몽(非復)이란 말이 학문이 진보되었을 때,

또는 면목을 일신했을 경우를 나타내는데 쓰이게 되었다.



반대로 「오하아몽(吳下阿蒙)」이라고만 하면 옛 그대로 있어 조금도 진보되지 않는 자나 학문이 없는 보잘 것 없는 인물을 말한다.

그것은 어쨌든 여몽의 진보는 손권에게는 아주 큰 수확이었다.

손권의 형 손책의 뒤를 이어 조조와 유비하고 대립했을 때, 그를 잘 보좌한 것은 주유였다.

주유는 4만이나 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에서 격파하여 오의 힘을 강화시켰으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최후까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유비의 세력이 호남성에서 확립되어 오의 서진을 막게 되는 점이었다.

그는 유비를 칠 것을 계획하고자 벼르고 있는 동안 그만 병사했다.노숙이 뒤를 이어 손권을 도왔다.

그의 방법은 주유하고 달랐다.

유비를 도리어 강화시켜 동맹해서 강대한 위의 조조와 대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잡아 유비는 촉을 탈취하여 삼국 정립의 형세가 되었다.

유비의 장(將)으로 용맹을 떨치던 관우는 형주를 지키고 있었다.

유비와 오와의 약속에서는 촉으로 들어가면 형주는 오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척했다.이 때 노숙이 죽어, 그 뒤를 이어 손권을 보좌한 갓이 여몽이다.

그는 손권에게 권하여 은근히 조조와 연락했으며 관우가 중원으로 출격하고 있는 틈을 타 그 근거지를 습격했다.

계략은 功을 나타내어 吳는 관우의 여러 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용장 관우도 잡혀 한풍(寒風) 속에서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오의 지반(地盤)은 이 여몽의 책(策)에 의해 거의 굳혀졌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여몽은 이제 오하의 아몽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