刎頸之交 문경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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刎頸之交 문경지교[편집]

   목 벨 문      목 경      갈 지      사귈 교  

문경지교(刎頸之交) 관련 설명[편집]

생사를 같이 하는 벗  조나라의 혜문왕이 화씨지벽이라는 진귀한 보물을 손안에 넣었을 때, 진나라의 소왕은 그 구슬과 진나라의 15개의 성과 교환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강한 진나라의 신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으며, 그렇다고 하여 진나라에서 15개의 성을 순순히 내준다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어려운 교섭에 사자로서 보내어진 사람이 인상여였다. 그는 환관의 수령인 무현의 식객에 불과했지만, 무현이 그의 인물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왕에게 추천하였던 것이다.진나라 왕은 인상여에게 사자로서의 예를 갖추지 않고, 구슬을 받자 기쁜듯이 시종과 궁녀들에게 내보이며, 이제 자기의 것이 되어버렸다고 좋아했다. 도저히 15개의 성과 교환하려는 기색이 없다고 간파한 인상여는,“그 구슬에는 흠이 있으므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하고 구슬을 되돌려 받자, 기둥을 등에 대고 우뚝 서서, 진나라 왕의 불신을 꾸짖으며 말했다.“왕께서 구슬을 뺏으신다면, 이 구슬은 제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서 부서질 것입니다.”결국 이 교섭은 진나라에 성의가 없어 그대로 끝났거니와, 조나라는 상여의 활동으로 구슬을 진나라에게 빼앗기지 않고서, 욕을 받지 않고 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왕은 기뻐하며 상여에게 상대부를 임명하였다.그 뒤에 진나라는 조나라를 쳐서 석성을 빼앗고, 그 이듬해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여 2만 명을 죽이고, 사자를 보내어 면지에서 조왕과 현견하여, 평화교섭을 행하고 싶다고 통고해 왔다. 조왕은 두려워서 가려 하지 않았지만, 장군인 염파와 인상여가,“왕께서 가시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여 비겁하다는것을 보여 주는 것이 됩니다.”라고 간하였기 때문에, 왕도 부득이 갈 결심을 했다. 상여가 수행하고 염파는 나라 안에 있게 되었다. 염파는 국경까지 왕을 전송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길을 계산해 보니, 왕복에 30일이 걸리지 않습니다. 30일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을 때에는, 태자를 왕위에 즉위시켜, 진나라가 태자를 인질로 삼는 것을 막으려고 생각하나이다.”왕은 그것을 허락했다. 모두가 필사의 각오였던 것이다.회견이 진행되고 잔치가 벌어졌을 때, 진왕은 조왕에게 비파를 청했다. 조왕이 비파를 연주하자, 진나라의 사관이 나와서,“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과 술을 마시고, 조왕으로 하여금 비파를 연주하게 했다.”라고 기록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나아가서 진왕에게,“이번에는 진왕께서 한 번 진나라의 사정을 연주해 주셨으면 하고 생각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진왕은 화를 내고 승낙하지 앟았다. 상여는 질그릇으로 된 악기를 진왕 앞에 내밀면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그래도 진왕은 응하지 않았다. 상여는 말했다.“지금 대왕과 저의 거리는 다섯 발짝에 불과합니다. 대왕은 인상여의 수중에 계신 것입니다.”왕의 시종들이 상여를 베려고 했다. 상여는 눈으로 성내면서 꾸짖었다. 시종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당황했다. 진왕은억지로 악기를 혀서 한 곡조를 연주했다. 상여는 조나라의 사관를 불러 기록케 했다.“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을 위하여 악기를 연주했다.”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제발 조나라의 15개 성을 바쳐, 진왕의 수를 축하하게 해 주십시오.”그러자 상여가 말했다.“제발 진나라의 함양을 바쳐 조왕의 수를 축하합시다.”진왕은 주연이 끝날 때까지, 조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했다.이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에 조나라 본군에서는, 열심히 군비를 갖추어 진나라에 대비했다. 이리하여 진나라는 행동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귀국하자 조왕은 상여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여 경대부에 임명했다. 상여는 염파보다도 벼슬이 높아진 것이다.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고 빠른 출세와 높은 벼슬에 오른 장군 염파가,“이 몸은 적군의 성새를 공략하고 시산혈해의 야전 전투에 큰 공을 세우기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그는 입술이나 놀리는 일을 가지고 오늘날 나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근본부터 보잘 것 없는 범골의 주제였던 그따위 인간의 아랫 벼슬이나 지키고 있는 나도 도저히 창피스러워 못 견디겠다.”이렇듯 노골적인 불평과 감정을 털어 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으리라. 성격이 괄괄하고 앞 뒤를 모르는 무인으로써 염파는 더욱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나중에는,“이제는 인상여를 어디서든지 직접 만나는 날에는 내 반드시 그에게 욕을 보여주고야 말 터이니 그런 줄 알아라.”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폭타적 선언을 했다.이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만나는 일을 피했다. 조정에서 회의가 있는 날도 염파장군이 출석하는 날은 병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핑계를 댔다. 보나마나 문무대신들이 다수 참석하는 자리에서 염파가 우선 자리다툼부터 일으킬 노릇이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거리에 나갔다가도 염파의 행차가 멀리서 눈에 띄면 자기는 수레를 돌려 사잇길로 빠져서 정면 충돌을 미리 피했다.이와 같은 인상여의 태도에 슬며시 화가 치밀었던 부하들은 보다 못해 떳떳이 맞설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상스럽고 비굴할 만큼 그는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끝내 이렇게까지 말하는 부하가 생겼다.“내가 당신을 섬긴 것은 당신의 높은 지혜와 정의감과 남아대장부다운 기개를 숭배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께서는 염파장군을 너무나 두려워 하고 계십니다. 우리네 같은 범부도 수치와 모욕에 대해서 감정을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당신의 상경의 신분이 아니십니까. 정말이지 이 이상 보고 견딜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로서 하직을 할까 합니다.”매우 흥분한 어조로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대들었다. 그러나 담담하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는 조용히 물었다.“정 그렇다면 내 말을 들어보게. 자네는 염파장군과 진나라의 임금과 어느 쪽이 더 세고 무섭다고 생각하나.”“그야 물론 진나라 임금님이죠.”“그럴테지! 그런데 나는 일찌기 진나라 왕의 위력 따위를 무서워 하지 않았네. 뿐인가, 거꾸로 나는 그 진나라의 궁중에 들어가서 한바탕 꾸짖어대고 호통을 쳐 주기까지 했네. 또 한 번은 여러 중신들을 거느리고 있는 자리에서 당당히 나라의 이론을 가지고 진나라 왕을 몰아세운 일도 있네. 그러한 사실들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정이 떨어졌단 말입니다.”“그러나 들어보게! 적어도 그만한 내가 아무리 바보 무골충이라 한들 염파장군 한 개인을 보고 겁이 나서 설설 기겠나? 다만 깊이 생가을 할 때 저 강대국인 진나라가 지금 우리 조나라를 무력으로 침범해 오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 온전히 염파장군과 나와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말일세. 두 마리의 호랑이가 만약에 서로 물고 뜯고 싸움을 해 보게.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나? 어느쪽이건 한 놈은 죽고야 마는 법일세. 그러니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의 위급을 생각함이요,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뒤로 밀쳐 두는 때문일세. 알겠나?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부하는 비로소 눈물이 글썽거리기까지 했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얕은 마음과 속된 감정을 뉘우쳤다. 그 후부터는 염파의 식객들을 만나러 가도 부하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참고 양보를 했다. 그러자 그 식객들은 더 우쭐댔고 염파 또한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얼마 후 조나라의 오경이라는 이름난 선비가 인상여의 사람됨을 알아 듣고는 조왕의 동의를 얻어 염파를 찾아가 내력을 설명하고 그를 피했던 이치를 상세히 설명했다.그 고집불통이던 염파장군도 크게 부끄러움을느껴 육단하여 형을 지고(상반신을 발가벗고 곤장을 때리는 형벌에 사용하는 가시나무 묶음을 그 알몸뚱이 잔등에 지고 그 가시나무 채찍으로 사정없이 자신을 때려달라 하는 마음을 드러내어) 인상여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식객들의 안내를 받아 인상여의 안뜨락으로 들어왔다.“참말로 면목이 없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무어라 해야 좋을 지 모르겠소. 모두가 천하고 어리석은 탓으로 당신의 그 하늘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은 뜻을 몰랐던 것이외다. 나를 벌하고 용서해 주시오.”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했다.이리하여 드디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생사를 함께 하여 목에 칼을 찔러도 마음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친하게 사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