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柯一夢 남가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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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柯一夢 남가일몽[편집]

   남녘 남      가지 가      한 일      꿈 몽  

남가일몽(南柯一夢) 관련 설명[편집]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 영화를 뜻함  

당나라 9대왕 덕종 때 양주 교외에 순우분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주변에 이름이 알려진 협객으로, 원래 술을 좋아하여, 한때는 그 수완이 팔려서 회남군의 부장을 지낸 일도 있었지만,

그것도 술로 실패한 이후로, 친구들을 모아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나무의 그늘은 수십 평에 이르러, 여름철에 술을 마시기에는 제격이었다.

정원 7년(791)의 가을철의 어느날, 그는 밖에서 술이 취하여, 두 친구들이 집으로 데려왔다. 그는 추녀 끝에서 잠이 들어,

“여기에서 잠시 쉬라구. 우리들은 당신의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말이나 돌보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하는 소리가 들릴락 말락할 때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을 차려 보니, 마당 끝에 두 사람의 관리가 엎드려 있었다.


“저희들은 괴안국왕이 보내서 마중 나온 사람입니다.”

그들이 시키는대로 문을 나서자, 거기에는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고 마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타자 마차는 큰 느티나무 뿌리쪽으로 있는 굴속으로 달려갔다.

본 일도 없는 경치 속을 수십 리를 달리자, 번화한 도읍에 도착했다. 왕궁의 성문에는 금글자로 <대괴안국>이란 씌어 있었다.

국왕의 접견이 있었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그는 국왕의 사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북쪽 변방의 국경수비대의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가 어린 시절에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국왕의 얘기에 따르면, 이 인연은 그의 아버지와 결정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왕궁 안에서 살도록 되어 있었으며, 세 사람의 집사가 따라 있었는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전부터 얼굴을 나는 전자화였다.

또 왕이 접견할 때 백관의 행렬 속에서, 술 마시던 친구인 주변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자화에게 물어 보니, 지금은 출세하여 대신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윽고 남가군의 태수로 임명되어, 전자화와 주변을 보좌관으로 받아 부임했다.

그로부터 20년, 전자화와 주변의 두 사람이 보좌를 잘하여 영내에는 잘 다스려져, 영내 백성들은 그를 신과 같이 우러러보게 되었다.

아내와의 사이에는 5남 2녀가 있었으며, 아들은 자기의 공적으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고, 딸들은 왕족 에게로 출가하여,

한 집안의 세력은 국내에서도 견줄 만한 사람이 없게 되어 있었다.


그해에 단라국의 군대가 남가군을 침략해 들어왔다.

주변이 3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해 온 주변은, 그 뒤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내가 급한 병으로 죽었다.

그는 관직을 사퇴하고 나라의 도읍으로 돌아왔는데, 글의 명성을 사모하여 출입하는 귀족이나 유력자들이 끊이지 않아,

국왕도 그 세력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마침 <나라에 어려움이 닥쳐올 불길한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상소문이 제출되어,

신하들로부터 이것은 순우분이 잠입한 것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차례차례로 나왔기 때문에,

국왕은 그에게 칩거생활을 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이 20여년 동안, 국가에 공헌하여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이런 상태가 되어,

완전히 칩거생활로 들어갔다. 이것을 안 국왕 내외는 순우분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자네도 고향을 떠나온 지가 오래 되므로, 한 번 돌아가 보는 것이 어떤가? 손자들은 내가 인수하기로 하고, 3년이 지나면 환영해 주겠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은 여기입니다.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국왕은,

“자네는 원래 속세의 사람이네. 여기는 자네의 집이 아닐세.” 하고 웃었다.

그는 여기에서 깜짝 놀라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고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에 왔을 때 맞이해 준 관리가 데려다 주어 자기 집에 돌아오자, 자기가 추녀끝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을 때, 관리들이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하여 갑자기 눈을 뜨자, 밖에서 자기가 업혀 들어왔을 때와 변함이 없이, 기울어진 챙 속에서 하인인 청소를 하고 있고,

두 사람의 친구들은 발을 씻고 있었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큰 느티나무의 뿌리쪽에 있는 굴을 파서 살펴보니, 성 모양을 한 개미의 집이 있고,

두 마리의 빨간 머리를 한 큰 개미의 둘레를 수십 마리의 큰 개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대괴안국>의 왕궁이었던 것이다. 다시 구멍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를 네 길쯤 위로 올라가니,

네모진 빈 동굴이 있어 성 모양의 개미집이 있었다. 이 곳이 그가 있던 남가군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감개가 무량하여 그 굴을 원래대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서, 다음날 아침에 들여다보니,

개미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남가군에서 만났던 주변들과는 열흘 동안이나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인을 보내어 알아 보니,

주변은 급한 병으로 죽고 전자화는 병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南柯一夢>의 덧없음을 느끼고 인간세상의 변천하기 쉬움을 깨닫고,

주색을 당장에 끊어 버리고, 도술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정축년에 집에서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남가국에서 한 약속의 기한이 그 해였던 깃이다.


후세에 <南柯太守傳>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이 이야기의 작가는 당나라 정원․원화연간 때의 사람으로 알려진 이공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