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立鷄群 학립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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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立鷄群 학립계군[편집]

   학 학      설 립      닭 계      무리 군  

학립계군(鶴立鷄群) 관련 설명[편집]

학이 많은 닭이 있는 곳에 서 있다는 뜻으로 눈에 띄게 훌륭함을 비유한 말  진나라 때 계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죽림칠현 가운데서도 유명한 위나라 중산대부 혜강의 아들이었다. 열 살 때 부친인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에 홀어머니를 모시며 근신하고 있었는데 죽은 아버지의 친구 산도가 이부에 있으면서 진혜제에게 계소를 천거하여 조정 시중의 벼슬을 시켰다. 그 때가 바로 역사상으로 유명한 팔왕지란이 한창이었던 무렵이었다.어느 날 경도(서울)성 안에서 변란이 일어났다. 제왕경이 이 변란에서 살해되었다. 계소가 변란의 형세 위급하고 중대함을 직시하고 황궁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궁문에서 문을 지키던 시위(侍衛)들이 어떤 자가 황급히 달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활을 들어 조준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이 때 시위관 소륭이 계소의 당당한 몸가짐을 보고 차마 죽이기가 아까워 급히 활을 쏘려고 하는 시위를 덮쳐 제지하여 위기 일발 직전에 계소는 목숨을 되찾은 것이다.영흥 초년에 하간, 왕옹 등이 병력을 몰아 반란을 일으켰다. 계소가 혜제를 따라 탕음에 가서 토벌을 하였으나 불행히도 패전을 하고 말았다. 그 때 혜제를 따라 출정했던 관원과 시위들이 죽은 자는 죽고 다친 자는 다쳤고 겁에 질린 자는  자기 한 몸의 목숨만을 위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계소만은 위풍을 떨치며 시종 정중하게 혜제를 보살피고 보위하였다.치열한 싸움은 그칠 줄을 모르고 적군의 화살이 빗발치듯 집중해 오는 임금의 수레를 감싸고 몸으로써 임금을 보호하는 사이 계소의 온 몸에는 고슴도치 모양 화살이 꽂혔다. 피투성이가 되어 임금의 발부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을 때는 임금의 옷에까지 그의 선혈이 낭자하게 물들었다. 혜제는 구사일생으로 오로지 계소 한 사람의 고군분투에 의하여 목숨을 건졌던 것이니 얼마나 고맙고 애처럽고 슬펐던 일이랴.그 후 측근 시위들이 임금님의 어의에 묻은 핏자국을 빨려 할 때,“건드리지 마라. 이것은 계시중의 충의와 장렬의 선혈이니 함부로 씻어버릴 수 없느니라.”목이 메어 부르짖고 끝끝내 그대로 입고 있었다.계소가 나라와 임금을 위해 장렬히 목숨을 던지기 전에 어떤 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친구이자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어제 저녁 뭇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계소를 보았습니다마는 아주 의기가 양양하고 당당한 것이 마치 독립불패의 학 한 마리가 닭의 무리 가운데 내려앉은 것 같더군요.”“자네는 여태 그 사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왕융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꾸를 했다.과연 「학립계군」 또는 「군계일학」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