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面楚歌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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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面楚歌 사면초가[편집]

   넉 사      낯 면      초나라 초      노래 가  

사면초가(四面楚歌) 관련 설명[편집]

사면이 적병으로 둘러싸일 경우와 도움없이 고립된 경우  초나라 왕인 항우와 한나라 왕인 유방과의 쟁패전도 거의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세는 이미 항우에게 부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강화를 받아들여 천하를 이분하여, 홍구의 서쪽을 한나라, 그리고 동쪽을 초나라로 결정했다.강화가 성립되자,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유방도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과 진평이 말했다.“이제야말로 한나라와 초나라의 우열은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이리하여 백마를 돌이켜 항우를 추격했다. 한신은 제나라로부터, 그리고 팽월은 양나라로부터, 그밖의 장군들도 각각 군대를 이끌고 달려와서, 해하에서 만나 항우의 군대를 추격했다.항우의 군대가 해하에서 성벽을 쌓고 그곳에 들어박혔다. 군대는 적고 식량도 떨어져 있었다. 한나라 군대와 제후의 군대는 성벽을 몇 겹으로 포위했다.  유방은 병사가 많아 수십 만 대군이 항우를 겹겹이 둘러싸니 성세가 장대하였다. 초패왕 항우는 위풍이 남달리 늠름하고 무쌍하여 항상 자기를 따를 자가 없다고 자처하면서 군사를 일으킨지 8년 동안 70여 회의 싸움을 치루었다. 이때 비록 궁세에 처해 있지만 그의 위력은 감퇴되지 않았다.유방은 적을 얕보지 않았고 많은 살상을 피하기 위해 강공책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장량의 계획을 받아 들여 한군에게 초나라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게 하여 항우의 군사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듣고 고향 생각에 젖게 하여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심리전을 쓴 결과 기대했던 대로 큰 효과를 거두었다.그날 밤에 항우는 한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한나라 군대가 이미 초나라 땅을 얻은 것일까?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해 보며 슬퍼했다. 일세 영웅인 항우도 이 때에는 실망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군이 지금 초나라의 땅을 완전히 배앗아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는데 내가 이렇게 허덕여 봤자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장막 안에서 술을 마시며 괴로움을 달랬다. 그는 당시 노래 잘 부르는 첩이 있었는데 이름은 우희로 나라와 맞바꿀 만한 미모의 계집이었다. 그리하여 어찌나 항우의 총애를 받았던지 전쟁 속에서도 조금도 항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또 오추라고 불리는 말이 있었는데 항우가 5년 동안 즐겨 타던 사랑스런 말이었다. 이 때 항우는 고개를 떨구고 자기의 신세를 돌이키니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쳐 의분을 누를 길 없어 즉흥 시로 슬피 노래를 불렀다.“힘이 산을 뽑음이여! 기운이 누리를 덮을 만 하도다. 때가 이롭지 아니함이여! 준마도 달리지 않도다. 준마도 닫지 아니함이여! 어떻게 할꼬?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어찌할꼬?”항우는 쉴 줄 모르고 두 번 세 번 한탄하며 노래를 불렀다. 미인 우희도 노랫 소리에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희도 애절한 목소리로 항우의 시를 받아 넘겼다.“한나라 군사는 이미 초나라 땅을 빼앗아 초나라의 노래 소리가 사면에서 들려 오는데, 대왕은 용맹과 마음을 잃었으니 미천한 계집이 어이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리오?”하며 이별의 슬픔을 삼키며 노래 불렀다. 항우는 이런 정경을 보자 불현듯이 왕년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군사 8천명을 거느리고 강동에서 서쪽으로 건너올 때는 웅장한 마음이 하늘을 찔렀는데 1세도 못가서 오늘날 이곳 해하로 쫓겨와 어려움에 닥쳐 있음을 생각할 때 비통함이 비길 데 없어 눈물이 앞을 가릴 따름이다. 드디어 항우는 가랑이진 창을 손에 들고 말에 올라탄 후 휘하의 군사 800여 명을 이끌고 밤새 포위망을 둟고 남으로 도망쳤으나 후에 오강에서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