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車可鑑 전거가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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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車可鑑[편집]

전거가감

(前車可鑑) 관련 설명[편집]

앞의 실수를 거울로 삼는다는 말  

서한 시대의 뛰어난 명신 가의라고 하는 인재가 있었다. 그는 낙양 사람으로서 일찍이 18세 때 시문에 능통하여 이미 주위에서 어깨를 겨룰 사람이 없었다. 이리하여 하남의 태수 오공이 그의 인물을 점찍어 문하로 불러 들였는데 벌써 소문이 조정에까지 퍼져 문제가 그를 중앙으로 불렀고 그의 나이 31세에 박사 칭호를 받았다. 문제는 자신이 원래 제후 출신인 데다가 세력이 강대한 제후들이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문제는 가의와 진평․주발 등 탁월한 명신을 중용하여 제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한편 고조가 세상을 떠난 이래 부패 일로를 걸어 온 국정의 쇄신을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가의는 이 새로운 왕을 받들어 정치를 행하는 데 있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나라에서부터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무수한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샅샅이 헤아려 거울로 삼고 제후의 힘을 쪼개고 백성의 힘을 키워서 정치의 바른 길을 닦아야 한다는 결론을 놓고 많은 헌책(獻策)을 시행케 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앞서 가던 차의 전복된 바퀴자국은 뒤따라 가는 차에게는 좋은 귀감이 됩니다. 우리들이 모범으로 삼고 있는 옛날 좋은 시대로서 하(夏)․은(殷)․주(周)의 3대는 지금으로 보면 먼 옛날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 시대의 정치가 잘 되어 있음은 환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앞서 간 시대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성현의 가르침에 반역하는 자로서 이러한 자가 오래 지탱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앞이었던 진나라가 빨리 망해버린 사실을 우리는 직접 우리의 눈으로 목도해 왔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렇듯 똑똑히 목도 하고도 어리석음과 잘못을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도 역시 암담하리라는 것은 필연의 사실입니다. 국가 존망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문제는 이 말에 귀를 기울여 감탄해 마지 않았다. 곧 가의의 이론을 실천에 옮겨서 제후의 영유지를 덜어 큰 나라들을 작은 나라로 쪼개어 놓는 동시에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전답의 세금을 탕감하는 등 농민을 후대했으며 극형을 폐지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조정에서부터 검소절약하는 기풍을 솔선하여 먼저 궁중 시녀들에게 보석으로 몸을 장식하거나 긴 치마자락을 질질 끄는 일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나라는 점점 살기 좋아지고 인심은 부드러워졌다. 태평한 가운데 연달아 풍년이 들기까지 해서 지방마다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히 찼으니 자연 백성은 골고루 여유 있는 생활을 누렸으며 관리들도 자연히 딴 생각없이 직무에 충실하게 되었다. 법의 그물을 늦추었으나 백성이 스스로 어기지 않고 오히려 죄를 범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전국시대 일곱 나라의 하나인 위(魏)나라의 문후(文侯)가 어느 날 공승이라는 말단 관직에 있는 불인이란 자를 시켜 술자리를 마련케 한 다음 여러 대신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문후는 이런 제안을 했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있어서는 흥미가 없으니 어디 내기라도 걸어서 지는 사람은 벌주로 큰 잔 하나씩을 마시게 하는 것이 어떨까?”대신들도 모두 찬성을 했다.

그런데 맨 처음 걸린 사람은 문후가 되었다. 대신들은 차마 따질 용기가 없어서 어물어물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말석 차지의 불인이 서슴지 않고 문후의 앞으로 다가가더니,“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이 술잔을 받으십시오.”큰 대접을 들어 거침없이 문후에게 바싹 내어 밀었다. 문후는 힐끗 곁눈질해 보았을 뿐 시침을 떼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나 불인은 부득부득 큰 사발을 안기려 들었다. 주위의 대신급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양 얼굴을 붉힌 채 긴장되어 있었다. 보다 못한 듯 家臣 한 사람이 참견했다.“불인은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우리 천자께서는 이미 과음을 하신 셈인데 그렇게 큰 잔을 강권해서 쓰겠는가?‘이 때 불인이 말했다. “「전차의 복철은 후차의 감」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전례에 비춰서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뜻인 줄 압니다. 신하가 되는 일도 군주가 되는 일도 다 같이 용이한 일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왕께서 법을 만들고 그 법이 금방 지켜지지 않는 선례를 만든다면 대관절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고 마땅히 받아야 할 벌주라면 받으시기 바랍니다.”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뼈대 있는 말이었다. 문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옳은 말이로다.”하고 손을 내밀어 큰 대접에 술을 받아 기분 좋게 들이켰다. 뿐만 아니라 이 불인을 두고두고 중용 했다.